저는 41세의 나이 지금 우편물을 보고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저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은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가족을 등한시하는 그런 분이셨는데 지금은 많이 보고싶은 아버지.
저는 중학교까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참 힘든 학창시절이었습니다. 버스비가 없어서 추운 겨울날 걸어서 학교 등교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찌감치 돈이란걸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공장에서의 생활은 즐거운 생활 배부르고 즐거운 생활이었고 고깃배를 타고 건축현장에서 돈을 조금 모았습니다.
그리고 2004년 작은 가게를 동업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제가 그리던 제 가게, 제 사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했는데 그것은 사기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분들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사기를 당한 후 방황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사고를 만났습니다. 제 운명이겠지만 너무나 슬펐습니다. 2005년 7월 비가 오는 오후 오토바이 운행 중 사고가 났는데 명치부터 하반신에 심한 척추 손상 때문에 완전 하반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 욕창수술, 계속되는 관절 통증, 시력저하로 왼쪽 눈 수술, 왼쪽 눈 실명
멀어지는 주위 사람들 너무나 힘에 부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멀어지는 가족, 주위 사람들 내가 몸이 이렇게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가족들은 저멀리 떠나갔습니다.
노모가 계시지만 어머님도 몸이 너무 아프셔서 제가 너무 죄송스럽고 미안하고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마음.. 너무나 속상하지만 표현하기 힘든 일입니다.
올초 욕창수술을 했는데 식구들은 전화도 하지 말라는 말에 제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병원비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금전에서의 서러움, 병원빚
지금도 재활병원에서의 생활로 따로 갈 곳도 없지만 정말 지금은 제가 조용히 쉴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은 병원비, 기저귀, 외래 교통비 등으로 감사히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아픈 사람을 생각하고 도움을 줄려고 노력하고 세상을 , 인생을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글을 쓰려고 쓰긴 했는데 앞뒤의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