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아이를 성공시키는 비결'이 떠돌고 있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아빠의 무관심'을 더한 것이 필수 3가지 조건이란다. 이 말이 인기를 끌었는지 3가지 조건에 이어 '아이의 체력'과 '도우미 아줌마의 충성심'까지 붙여진 5가지 조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근데 왜 '아빠의 무관심'이 첫번째 조건일까. 주변 엄마들에게 물으니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하면 방해만 된다"는 해석이다. 과연 그럴까. '아빠의 살가운 관심' 덕분에 아이가 달라졌다는 가정을 찾아가봤다.
매일 한자 쓰기, 3급 시험 합격
10년간 영어놀이 미 명문대 입학
아빠와 함께 도전 교육효과 극대
· 바쁜 샐러리맨 아빠, 아이와 합작!
40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 이재현 씨.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어 늘 회식, 술자리가 잦은 편이다. 이 바쁜 사람이 최근 아들과 함께 크게 한 건을 했단다.
"아이고, 아들 자랑하면 팔불출이려나. 그런데 굉장히 뿌듯해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최근 한자 3급 시험에 합격했어요. 학원도 안 다니고 학습지 선생님도 없이 저랑 둘이서 2년간 저녁마다 공부한 게 전부입니다. 아들과 아빠가 이루어낸 거죠."
한자 3급이면 대학생들이 치는 시험의 수준이 아닌가. 2천300여 자의 한자를 모두 익히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 단어들이 들어가는 사자성어들 역시 모두 알아야 한다. 이들 부자의 성과는 꽤 대단한 거다.
"저 역시 아이가 5세가 될 때까지 별다른 교류를 못했어요. 일이 많고 피곤하니 집에 가면 쉬고 싶죠. 어느날 아이가 학습지 하기가 싫다며 억지를 부리더라고요. 야단을 쳤죠. 그런데 아이가 대뜸 아빠는 모르면서 야단만 친다는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빠의 권위로 야단을 치니 아이의 반발만 사더라고요."
그래서 이 씨가 선택한 아들과의 교감 방법이 한자였다. 하루에 30분씩 아들과 함께 한자 공부를 해보자였다. 한자 속에는 이야기가 있고 무엇보다 생각을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하루에 10자 정도씩 함께 쓰고 외웠죠. 어떨 땐 10분만에 끝나기도 해요. 회식으로 술을 먹고 늦게 들어가도 아들 녀석이 기대하면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려요. 수준이 올라가니 생전 써 보지 못한 단어들이 나와요. 그걸 이해시키기 위해 아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네요. 아들이 그걸 너무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이 씨는 아들이 3급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보다 아들과 많이 친해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아빠에게는 인정을 받고 싶어한대요. 아빠가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뭔가 같이 도전해보면 아이는 굉장히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아빠표 공부, 아이에게 신선한 자극!
"아빠와 영어공부 하는 게 가장 재미있었어요. 아빠는 강요하지 않고 늘 우리와 함께 놀면서 공부해주셨거든요." 평범한 직장인 김수봉 씨가 10년 간 딸 김빛나래 양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쳐서 미국의 명문 듀크대에 입학시킨 사연은 유명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아빠, 영재교육기관이나 특목고도 아닌 일반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딸이 함께 이루어낸 결과 치고는 대단하다. 그녀는 특별 과외 수업 한번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 부녀가 조금 달랐던 건 10년간 꾸준히 아빠와 아이가 함께 영어 놀이를 한 것 뿐이었다.
아빠와 아이가 같이 영어 동화책 암기를 해서 서로 말해보고 영어 테이프 받아쓰기를 함께 했단다. 특별한 학습 방법이 아니지만 딸은 아빠와 같이 한다는 것이 무척 신이 났을 뿐이다. 아빠보다 잘하고 싶었고, 아빠를 이기고 싶고,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었단다. 아빠표 공부는 생각지 못한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김 씨는 "딸의 성격을 잘 아니까 그에 맞춰서 즐겁게 공부를 했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커리큘럼을 직접 짜서 그에 맞춰 영어 진도를 나갔다"고 전했다.
아이와 아빠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아빠와 추억만들기' 권오진 단장은 "아빠가 놀아주지 않으니 아이들은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마마보이가 되거나 학원에 오래 다니면서 티처보이가 된다"고 했다. 권 단장은 아빠가 함께 놀면 정서적인 안정감과 아빠와 특별한 교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단장은 아빠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아이가 가진 씨앗을 발견하고, 꾸준히 물을 주고 가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빠가 손을 내밀고 아빠가 함께 공부하며 교육 효과는 배가 된다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섬세한 정보력으로 아이를 코치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면 큰 그림을 그리고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빠의 몫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제 엄마의 막강한 정보력을 아빠와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아이의 성장에 막강하고 굉장한 조력자를 얻게 되는 셈이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